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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 이야기

화가와 개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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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 훨씬 지난 일입니다.

춘천에서 일하던 호랭이는 다이어리를 하나 주웠는데 그 안에는 10만원짜리 수표 여러 장이 들어있었습니다.

다행히 다이어리 주인 친구의 전화번호가 적혀있어서 주인을 찾아줄 수 있었습니다.

그 다이어리의 주인은 자신이 화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러고보니 다이어리에는 온통 연필로 그린 그림들로 가득했습니다.

그 화가는 감사의 표시를 하고싶다며 한사코 호랭이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말이 집이지 그곳은 비닐하우스를 개조하여 만든 숙소라는 말이 더 어울릴만한 곳이었습니다.

안에는 온통 그림 도구와 그림들 뿐이었습니다.

얼마 후 화가는 밥을 차려왔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나이가 서른쯤 되어 보이는 그는 무척이나 가난한 화가였습니다.

지갑 속 수표는 자신이 지금 일하고 있는 회사에 수금해다 줄 돈이었습니다.

그걸 잃어버린 탓에 월급을 못 받을 뻔한 걸 호랭이가 찾아준 것이었습니다.

그는 정말 가난하지만 그림에 대한 열정만은 강한 화가였습니다.

그래서 공장에서 일을하거나 막노동 운이 좋으면 남의 그림을 카피하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거나 그림 재료들을 산다고 했습니다.

오늘 오전에 한 개발사 대표와 이야기를 하고 있노라니 이 해묵은 일이 떠올랐습니다.

자신도 개발자이던 이 개발사의 대표는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은 후 직접 소프트웨어 회사를 차렸습니다.

하지만 돈이 없다보니 SI 프로젝트를 진행해서 번 돈으로 소프트웨어를 만들기를 5년간 해 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제서야 완성된 두 개의 솔루션으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려는데

또다시 자금의 압박이 시작된 것입니다.

다시 SI로 개발자들을 투입하여 자금을 구하자니 끝이 없을 듯하여

이번에는 투자를 좀 받아보려고 여기저기 알아보고 다니는 중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를 운영한다는 건 하면 할 수록 힘빠지고 어려운 일이라는 푸념을 들었습니다.

투자사들은 백데이터를 원하지만 5년 내내 R&D에만 투자해 온 회사에 변변한 매출이 있을 리 없습니다.

그들이 만든 솔루션이 어느정도의 가치를 가졌는지 평가해 줄 투자사도 찾기가 힘든 형편입니다.

그래서 큰 회사에 영업이라도 좀 도와달라고 부탁을 했더니 건당 10억 이하의 일은 취급하지 않는다며

편법을 알려주더랍니다. OTL

정직한 개발자에겐 아무래도 그건 사기처럼 느껴지기에 거절하고 돌아섰지만

당장 필요한 총알과 편법, SI, 투자 중 그 어느 것 하나 손에 잡히는 것이 없어 걱정이라던 그 대표를 보고 있자니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막노동을 하고 자존심을 꺾으며 카피 그림을 그리는 일도 마다하지 않던 화가가 떠올랐습니다.

후배들에게는 절대로 한국에서 소프트웨어 회사를 차리지 말라고 당부한다는 그 대표의 뒷모습이 한동안 기억에 남을 듯합니다.

ㅠ_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