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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랭이 사는 이야기

[추천] 잘 들었나요?




월간 샘터는 호랭이에게 참 의미있는 잡지입니다.

호랭이가 처음으로 기자라는 직업을 가지게 된 곳이기도 하지만

호랭이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준 잡지이기도 한 까닭입니다.

바쁜 일상 탓에 한동안 읽지 못했는데 요즘 불면증 덕분(?)에 다시 가까이 하게 되었습니다.

2008년 1월호에 실린 다음 글은 호랭이 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분들에게 꼭 필요한 내용이라 생각되어 옮겨봅니다.

먼저 말씀드리지면 이 글을 쓴 최영 님은 지난 2008년 11월에 사법시험 최종 합격자가 되었습니다.

'와~ 좋겠다!!! 근데 뭐 사법고시 합격하는 사람이 한두 사람이람?'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이분은 시각장애3급이라는 점이 안 그래도 불면증에 시달리는 호랭이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하네요.

그리고 그가 전하는 메시지 또한...

잘 들었나요?

고시원에서 법전과 씨름하는 고시생들은 언제 행복을 느낄까? 내 경우를 생각해보았다. 나는 아무래도 친구들과 맛있는 걸 집어 먹으면서 수다를 떠는 시간이 가장 했복한 것 같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 신변잡기, 주변 사람들 얘기 등을 하며 두세 시간씩 수다를 떠는 것이 예사다. 전화통을 붙잡고 한시간 넘게 수다를 떨기도 한다. 맞다. 자타가 인정하는 '아줌마 스타일'이다.

그런데 이런 취미(?) 속에 나의 장점과 단점의 씨앗이 모두 들어 있다. 우선 단점은 말을 너무 많이해서 그만큼 실수도 많이 하게 된다는 것이다. 말을 많이 할수록 스스로 뱉은 말의 족쇄에 얽매이게 된다. 그래서 올해는 말을 줄이려고 한다.

그나마 스스로 위안으로 삼는 것은 내가 말을 많이 하는 것 못징낳게 듣는 것도 잘한다는 것이다. 여기부터가 나의 장점에 속한다. 실은 잘 듣는 것, 제대로 듣는 것에는 꽤 자신이 있다. 말을 하는 것을 즐길 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즐겁다. 그런 점에서 '듣기'는 내가 잘하는 것이라기보다 좋아하는 것에 더 가까울 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지만, 듣기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들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듣지 못한 경우, 이해했다고 생각하지만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듣는 것은 일종의 '재능'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므로 듣는 것에도 사법시험 공부 못지않게 훈련과 노력이 필요하다. 듣기는 결코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다른 일들처럼 관심을 가지고 소양을 갖추어야 비로소 완수할 수 있는 과업이다.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의 있어야 할 것이다. 상대방의 진의를 가감 없이 올바르게 이해해야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려면 우선 들어야 한다. 그런데 적지 ㅇ낳은 이가 듣기의 위력을 과서평가할 뿐 아니라, 자신의 듣기 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저마다 자기야말로 '확실히' 들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듣지 않아도 다 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 사름들 중엔 상대방의 진심이야 어떻든 ;자기가 듣고 싶은 대로 듣기' 방면의 달인들이 많다.

듣기는 불편한 일이다. 자기 편의와는 거리가 멀고, 듣기에 편리한 방법이라곤 없다. 나의 불편을 감수하고 서라도 상대방의 편의를 우선하고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해야 제대로 들을 수 있다. 듣기가 지극히 이타적인 일이 될 때 우리의 귀가 열린다. 자기중심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다음을 열 때 비로소 들을 준비가 된다.

내게 견디기 힘든 일이 있다면, 그것은 이해하지 못했으면서 이해했다고 말하는 일이다. 그런 순간엔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사회생왈을 하면서 이해하지 못할 때마다 솔직하게 털어놓고 일일이 되묻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안다. 직장인이 자주 하는 거짓말 1위가 "알겠습니다"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10%라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과 습관적으로 아는 척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얼마 전 나는 그동안 꿈꾸어오던 일 중 하나를 이루었다. 물론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더 많이 남아 있다. 분명한 것은 어떤 일을 하든, 스스로에게 늘 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정말로 잘 들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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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_ 시각장애3급인 필자는 중학생 때부터 키워온 법조인의 꿈을 행햐 여섯 차례 도전한 끝에 2008년 11월, 국내에서는 시각장애인 최초로 사법시험에 최종 합격했습니다. 정의감이 있어도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기란 쉽지 않습니다. 전태일처럼, 그 쉽지 않은 일을 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