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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 이야기

LG경제연구원 ‘하드웨어-컨텐츠 연계 모델의 이상과 현실’

LG경제연구원에서 재미있는 자료를 발표했는데...
차마 읽어 볼 시간이 없어서 일단 옮겨둘 목적으로 퍼 온 글입니다.



하드웨어-컨텐츠 연계 모델의 이상과 현실

스마트폰과 모바일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단말업체가 컨텐츠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른바 하드웨어-컨텐츠 연계 사업 모델에 대한 관심이 높다. 단말기와 컨텐츠를 연계하는 경우 차별화의 폭이 넓어지고 새로운 수익원이 발생하는 점은 물론 제조업체가 쉽게 가질 수 없었던 고객과의 유대가 생긴다는 점에서 하드웨어-컨텐츠 연계 모델은 전자 업계의 많은 제조사들이 꿈꿔온 모델이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단말업체에게 약속의 땅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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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일본 게임시장 규모의 변화

80년대 후반 소니와 파나소닉의 영화사 인수, 비디오 게임 시장에서의 닌텐도와 소니의 경쟁, 애플이 촉발한 온라인 음원 유통, 노키아의 오비와 애플의 앱스토어에 이르기까지 전자 업계에는 하드웨어-컨텐츠를 연계한 업체들의 수많은 성공과 실패 사례가 부침한 바있다.

성공을 거둔 업체의 핵심 비결은 새로운 서비스를 흡수해 줄 고객의 니즈를 분명히 알았거나 또는 이들 고객과 이미 단단한 유대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또한 단말이 서비스 타겟 고객을 유인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으며, 컨텐츠 진화에 맞춰 하드웨어를 지속적으로 진화시킨 점도 성공 업체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징이었다.

그러나 플랫폼이 없는 경우 하드웨어와 컨텐츠 간의 연결이 느슨하고, 후발주자가 선발주자를 따라잡기 힘들며, 시장이 성숙함에 따라 단말과 컨텐츠 간의 통합이 점차 개방화되거나 분업화되어 가는 현실적 장벽도 존재한다.

국내 업계는 단말과 컨텐츠를 연계함에 있어 이러한 성공 요인과 현실적 장벽들을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업계의 흐름에 단순히 따라가기 보다는 좀 더 멀리 보고, 아직 남아 있는 기회를 찾아내고, 그를 위해서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선도적인 고민과 실행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컨텐츠 서비스는 최근 휴대폰 업계의 가장 뜨거운 감자 중 하나다. 노키아가2007년 말, 컨텐츠 포털인 Ovi를 연 것을 시작으로 애플이 아이폰과 앱스토어 서비스로 열풍을 일으키자 다른 휴대폰 업체들도 이에 대한 대응에 분주하다. 삼성과 소니에릭슨은 자사의 단말 사용자를 대상으로 한 컨텐츠 서비스 사이트를 확대 개편하여 동영상 다운로드 서비스와 어플리케이션 스토어를 열었고 LG 역시 자체 어플리케이션 스토어를 준비하고 있다 한다. 업계의 이러한 움직임을 두고 이제 휴대 단말 사업에서 컨텐츠 서비스는 차별화를 위한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 요소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Ⅰ. 사업 모델의 의미

컨텐츠 서비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일차적인 이유는 경쟁과 기술적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노키아와 애플이 서비스와 연계된 단말로 시장을 드라이브하고 있고,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휴대 단말에서 이용 가능한 컨텐츠의 폭이 넓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쟁과 기술 요소를 배제한다 하더라도, 단말 업체가 컨텐츠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컨텐츠와 단말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컨텐츠, 혹은 컨텐츠 서비스는 추상적인 것이다. 단말을 통해 그것을 사용하기 전까지는 소비자는 그 실체를 알 수가 없다. 컨텐츠가 없는 단말도 불완전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자동차나 전화기, 계산기처럼 그 자체가 사용 목적이 되는 기기와는 달리 PC와 TV는 어떤 컨텐츠를 표시하면서 유저의 사용 목적이 완결된다. 컨텐츠가 없다면 단말을 사용하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새로운 단말을 만드는 업체는 단말과 컨텐츠를 함께 제공함으로써 단말의 고객 가치를 훨씬 더 명확하게 알릴수가 있으며, 컨텐츠만 있고 그에 부합하는 단말이 없을 경우 컨텐츠 업체가 단말을 만들기도 한다. 말하자면 컨텐츠와 단말은 서로에게 숨을 불어넣는 존재인 셈이다.

하드웨어-컨텐츠 연계 모델의 사업적 가치

컨텐츠와 하드웨어를 연계한 모델은 사업적으로도 몇 가지 시너지를 갖는다. 첫째, 컨텐츠와 서비스를 번들링함으로써 하드웨어에 국한되어왔던 차별화 폭을 확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기기와 연계된 컨텐츠 서비스 자체가 차별화 요소가 되고, 그 다음에는 서비스 방식을 바꿈으로써 차별화를 시도한다. 1년 간 무제한 다운로드 서비스를 제공하여 애플의 아이튠스에 대항한 노키아의 엑스프레스 뮤직(XpressMusic)이 그렇다.

둘째, 컨텐츠를 통해 얻는 부가 수익이 기기의 가격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애플이 출시한 아이폰 3GS의 북미 유통가는 99$에 책정되었는데 이것은 단말 제조 원가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알려져 있다. 고객의 서비스 요금을 애플과 사업자가 배분하면서 단말의 판매 가격을 낮춘 것이다. 이러한 가격 정책은 소비자에게는 기기 구입의 장벽을 낮추고, 서비스 수익원이 없는 경쟁 업체들에게는 막대한 위협으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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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게임 종류별 구성비

셋째로, 컨텐츠 서비스는 제조 업체가 좀처럼 갖기 힘든 고객과의 ‘관계’를 형성시켜주는 작용을 한다. 하드웨어 사업은 제품이 구매되는 순간을 제외하면 제조사와 구매자 사이의 유대가 매우 느슨하다. 더구나 재구매의 순간은 매우 짧고 또한 즉흥적이기 때문에 기기 업체가 지속적인 재구매를 보장 받기도 쉽지 않다. 반면,서비스는 고객과의 지속적인 상호 작용을 핵심으로 한다. 따라서 컨텐츠를 통해 고객을 잡아둘 수 있다면(Lock-in), 그 컨텐츠와 연계된 단말 역시 재구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Ⅱ. 하드웨어-컨텐츠 연계 사례

이처럼, 단말과 컨텐츠의 통합으로 발생하는 이점 때문에 전자 사업의 역사 속에서 단말 업체가 컨텐츠 사업에 진출한 사례는 의외로 빈번하다. MP3 플레이어인 아이팟이 그랬고, 닌텐도나 플레이스테이션 같은 게임기가 그랬다. 소니는 단말과 컨텐츠를 연계하기 위해 영화사와 음반사까지 인수한 바 있다. 디지털 열풍이 불던2000년대 초반 국내 대기업 역시 컨텐츠 투자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컨텐츠 서비스에 대한 유인이 있다는 것, 그리고 실제 진출 사례가 많다는 것과 컨텐츠 사업이 단말 업체에게 ‘약속의 땅’이 되는가 하는 것은 다소 다른 이야기이다. 과거에 컨텐츠 사업을 시도한 업체들은 어떤 결과를 얻었으며 어떤 교훈을 남겼는가? 지금부터 전자 사업의 역사 속에서 단말과 컨텐츠를 연계한 사례들을 살펴보자.

① 소니와 파나소닉의 영화사 인수

1989년과 1990년은 일본 전자 업계에 기록적인 해이다. 1989년 소니가 콜롬비아 영화사를 34억에 인수한 것에 이어 파나소닉(당시 마쓰시다)이 영화엔터테인먼트 회사인 MCA를 무려 61억 달러에 인수한 것이다. 뉴욕 타임즈는 이 두 건의 인수를 비교분석한 기사를 냈을 정도로 일본 전자 업계의 양대 산맥의 행보는 큰 관심을 모았다.전자 기기 회사가 왜 영화사를 인수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양사의 입장은 확고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사이의 시너지 때문이라는 것이다.

컨텐츠 사업과 하드웨어 표준 경쟁

그 당시는 아날로그 기술을 대체하는 디지털 기술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비디오와 오디오 기기를 주력 사업으로 하던 소니와 파나소닉에 있어 디지털 전환은 제품의 종류와 표준이 모두 바뀌는 것을 의미했다. VHS와 Beta 방식의 비디오 표준을 두고 경쟁했던 양사는 또 한번 사운을 건 승부를 예감했을 것이다.

소니의 영화사 인수는 비디오 표준 전쟁에서 얻은 뼈저린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Beta 방식의 기술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컨텐츠 제작 업체가 VHS를 지지하면서 승부가 갈렸기 때문이다. 소니는 컨텐츠 사업에 진출함으로써 차세대 표준 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고 보았을 것이며, 파나소닉은 방어 차원에서라도 영화사를 인수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영화사 인수의 결과는 어땠을까? 사업적 성과를 놓고 본다면 파나소닉은 실패, 소니는 성공이라 말할 수 있겠다. 문화 차이, 경영 부진 등의 이유로 파나소닉은 인수 3년 만에 MCA를 매각해 버렸기 때문이다. 반면 소니는 콜롬비아 영화사를 소니픽쳐스로 개명했고 영화 사업은 소니의 중요 사업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드웨어적 사고가 초래한 역(逆) 시너지

그러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사이의 시너지라는 당초의 전략적 목적에 대해서는다시 한번 살펴보자. 물론 소니는 목적을 달성했다. 도시바의 HD-DVD와 소니의Blu-ray 사이의 DVD 표준 경쟁은 소니의 승리로 끝났기 때문이다. 헐리우드 영화사들의 든든한 지지가 한 몫을 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 승리가 소니에게 얼마나 큰 사업 성과를 안겨 주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가 든다. 네트워크 시대에 저장매체 표준의 승리는 제한적인 효과를 가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디지털화로 인해 컨텐츠는 비디오테이프, CD-ROM, DVD와 같은 물리적 저장 매체의 구속으로부터 점점 벗어나고 있다. 소니는 디지털화로 인한 컨텐츠의 고용량, 고화질화가 되어 컨텐츠 유통이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통신과 압축기술의 발전으로 온라인으로 컨텐츠가 유통될 가능성은 과소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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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아이튠즈에서 판매된 곡 수

역사에서 가정은 없는 것이라지만, 소니가 컨텐츠 사업의 관점에서 하드웨어 사업을 바라 보았다면 어떤 결과를 얻었을까? 그랬다면 차세대 DVD의 표준 경쟁에 힘을 쏟기보다 컨텐츠 압축이나 전송 기술에 더 큰 노하우를 확보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랬다면 애플과 휴대폰 업체들이 추진하고 있는 동영상 서비스가 소니의 손에서 좀 더 빨리 현실화되었을 지도 모른다.

단말과 컨텐츠를 연계한 사업 모델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소니는 아직 꿈을 이루지 못하였으며, 최근에는 사업적으로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컨텐츠와 하드웨어를 연결하여 디지털 시대를 준비하면서도 사실은 하드웨어와 아날로그 중심적인사고를 탈피하지 못했던 것이 최근 소니가 겪는 어려움의 원인중 하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② 소니와 닌텐도의 게임 전쟁

게임은 하드웨어와 컨텐츠가 연계되는 가장 대표적이고 전형적인 사업이다. 닌텐도의 DS나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은 그에 맞는 전용 컨텐츠가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사업의 포문을 열었다 할 수 있는 닌텐도는 사실 제조업체가 아니라 컨텐츠 제작 업체였다는 점이다. 패미컴을 출시하기 이전만 하더라도 닌텐도는 상업용 오락기에 게임을 제공하던 회사였다. 그러나 고성능 비디오 게임 컨텐츠를 개발하고 싶어했던 닌텐도 내부의 개발자들은 이것을 구동할 수 있는 고성능 디바이스를 직접 만들고 싶어 했다. 세가나 아타리가 가정용 비디오 게임기를 만들고는 있었으나 너무 비싸서 보급률이 낮았고, 그를 대상으로 한 컨텐츠를 만드는 것은 사업성이 없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1983년 패미컴을 출시한 닌텐도는 로열티를 기반으로 한 협력사(3rd Party)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게임 유통망을 직접 관리하면서 불법, 비인가, 저질 컨텐츠를 추방하는 등 단말과 연계한 컨텐츠 사업 모델의 원형을 제시했다.

하드웨어 혁신이 주도한 게임 시장의 전성기

게임기 사업에서는 후발주자였던 닌텐도가 시장을 급속히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하드웨어의 힘이었다. 닌텐도는 수준 높은 컨텐츠를 담을 수 있도록 기억 장치의 용량은 경쟁사보다 훨씬 높이는 대신, 최고 사양인 16비트 프로세서 대신 8비트 프로세서를 채용하고, 키보드, 모뎀 등 게임과 상관없는 장치들을 제거함으로써 기기 가격을 낮췄다. 컨텐츠 판매를 위해 하드웨어의 가격을 낮게 책정한 것도 닌텐도가 처음 시도한 전략이다. 아마도 닌텐도 자신이 하드웨어 업체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러한 전략이 가능했을 것이다.

10년 동안 깨질 것 같지 않았던 닌텐도의 아성은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이 등장하면서 허물어졌다. 원래 소니는 닌텐도와 CD-ROM 공급에 대한 전략적 제휴를 맺은 상태였는데, CD-ROM 표준을 장악한 소니의 세력이 지나치게 커질 것을 두려워한 닌텐도가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하면서 소니가 독자 게임기를 개발하게 된 결정적 단초를 제공했다.


소니의 게임 사업 모델은 닌텐도의 그것을 철저하게 벤치마킹했다. 소니가 보기에 컨텐츠 연계 측면에서 닌텐도의 사업 모델은 거의 흠 잡을 데가 없었던 것이다. 소니가 닌텐도와 차별화했던 점은 단 한 가지, 하드웨어였다.

플레이스테이션은 당시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집적도를 가진 LSI칩을 탑재한, 컴퓨터에 버금가는 게임기였다. 3D 컨텐츠를 개발하고 싶어 했던 게임 개발자들은 플레이스테이션의 성능에 매료되었다. 또한 소니는 컨텐츠 업체의 수익성을 높일수 있도록 컨텐츠 유통 구조를 개선하였는데, 여기에도 하드웨어 혁신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바로 CD-ROM이다. 닌텐도가 채택한 게임 카트리지는 생산이 쉽지 않아 소비자의 수요와 컨텐츠 업체의 게임 생산까지 리드 타임이 너무 길었다. 이로인해 컨텐츠 업체는 재고 부담을 떠안기 일쑤였던 것이다. 반면 소니의 CD-ROM은 즉각적으로 대량 생산이 가능했으므로 이런 위험을 훨씬 줄일 수 있었다. 시장의 수요에 맞춰 게임 타이틀의 생산 계획을 조정할 수 있었던 게임 업체들이 닌텐도보다 소니에게 더 매력을 느낀 것은 당연했다.

저무는 비디오 게임 시장

그러나 그로부터 10년 후 또 게임이 뒤집어진다. 2004년 출시된 닌텐도의 DS와 Wii가 소니를 다시 제친 것이다. 게임 매니아를 타겟으로 했던 플레이스테이션에 비해 여성, 중장년 등 게임 비고객을 대상으로 한 DS와 Wii의 성공은 잘 알려져 있다.그러나 닌텐도의 성공보다 좀 더 주목해야 할 점은 닌텐도가 DS를 개발하게 된 배경에 있다. 일본 게임 시장의 규모에 대한 <그림 1>을 보면 1996년과 1997년 시장이 정점을 친 이후로 지속적으로 시장은 축소되고 있었다. 2000년 3월 플레이스테이션2가 출시되면서 하드웨어 판매는 일시적으로 증가했으나 게임 시장의 축소 트렌드를 반전시키지는 못했다. 2000년대 들어 출시된 게임 타이틀의 수는 90년대에 비해 증가했지만 판매실적은 역시 저조했다.3이것은 히트 게임의 부재 등으로 인한 게임 유저의 흥미 감소, 즉 고객 이탈을 보여주는 시그널이었다. 닌텐도는 이것을 기회로 화려하게 부활하여 창사 이래 최고 실적을 구가하고 있지만, 최근 들어 DS와 Wii의 판매 증가 속도가 둔화되고 있어 닌텐도 열풍이 점차 수그러드는 게 아닌가 하는 회의론이 조금씩 등장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의 비디오 게임 시장 축소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었다. 업계에서는 플레이스테이션 3나 닌텐도의 신제품에 대한 대기 수요를 원인으로 지적한다. 그러나 그것이 하드웨어의 문제였다면 게임 타이틀 시장의 축소까지 충분히 설명하지는 못한다. 이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PC 보급과이로 인한 온라인 게임 시장의 확대를 같이 놓고 봐야 한다. 2006년 국내 게임 시장의 구성비를 보면 한 때 게임의 대명사였던 비디오 게임은 온라인 게임 시장에 자리를 내주었고, 지금은 전체 시장의 5%에 불과하다(<그림 2> 참조). 별도의 단말을 사지 않아도 쉽게 즐길 수 있고, 상대적으로 컨텐츠 이용 비용이 저렴하면서 다양한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점 등에서 온라인 게임의 장점이 더 많기 때문이다.

비디오 게임 시장에서 닌텐도와 소니의 경쟁은 늘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러나 어찌 보면 이들 간의 경쟁은 시장의 한 단면일 뿐, 게임시장의 더 큰 흐름은 하드웨어와 컨텐츠가 닫혀 있는 비디오 게임 시장이 온라인이라는 개방의 흐름에 도태되었다는 것이 아닐까.

③ 음악 유통 구조를 바꾼 애플

아이튠스는 아이팟 때문에 성공했는가, 아이팟이 아이튠스 때문에 성공했는가. 시간적 순서만을 놓고 굳이 답을 낸다면 아이튠스가 있어 아이팟이 있었다는 주장이좀 더 설득력이 있다. 음악 관리 프로그램인 아이튠스 소프트웨어가 출시된 것이2001년 1월이고, 같은 해 10월 아이팟 1세대가 출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팟1세대의 성과는 지지부진했다. 더구나 인터넷에서 음악을 다운로드 받아 음악 CD를제작할 수 있게 한 아이튠스는 불법적인 음원 거래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음반 관계자들로부터 엄청난 공격을 받았다.

스티브 잡스가 미국의 5대 음반사 관계자들을 설득해서 온라인 뮤직 스토어를 열겠다는 역발상을 해낸 2003년까지 아이튠스는 지금의 모습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튠스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을때 시장의 반응은 뜨거웠다(<그림 3> 참조). 애플은 단숨에 온라인 음원 시장의 70%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게 된다. 아이팟 열풍의원조인 아이팟 미니가 출시된 것은 그로부터 약 8개월이 지난 후였다.

애플의 오아시스, 후발주자의 신기루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애플 이후에도 온라인 뮤직 스토어가 꾸준히 문을 열었지만 애플의 아성은 깨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애플이 찾아낸 오아시스를 따라 많은 후발 주자들이 시장 기회를 엿보았지만, 이들에게 온라인 음악 시장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신기루였다.

서비스와 직접적으로 연계된 단말이 없어서일까? 하지만 애플과 동일한 사업 모델을 시도한 마이크로소프트도 고전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단말 시장의 최강자인 노키아도 현재까지는 고전 중이다. BBC 뉴스는 노키아의 컴스위드뮤직(Comes WithMusic) 서비스가 1년간 무제한 다운로드라는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핵심 시장이라 할 수 있는 영국에서 1년 동안 23,000여명의 가입자를 모으는데 그쳤다고 보도했다. 컴스위드뮤직 (Comes With Music) 서비스와 연동된 단말기인 엑스프레스뮤직(XpressMusic) 시리즈의 영국 내 판매량은70만대에 육박했음을 감안하면 대단히 저조한 실적이다. 고전의 원인에 대해 노키아는 학습의 과정이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뮤직 스토어를 열고 나서 이 서비스를 처음으로 탑재한 단말은N95였는데, 멀티미디어 PC를 지향하는 N95를 구매한 고객들은음악 다운로드 서비스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를 교훈으로 노키아는 뮤직 서비스 전용 휴대폰인 엑스프레스뮤직(Expree Music)을 출시했고 이를 기반으로 신흥 시장 등에서 성과를 올리고 있다 한다.

변화가 예고되는 온라인 음악 시장

그러나 온라인 음원 서비스에도 새로운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사실상 애플의 독점 상태였던 미국 음원 시장에서 2위 업체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바로 아마존이다. NPD 그룹의 조사에 따르면 아마존의 시장점유율은 빠르게 성장하여 `08년 16%(애플 87%, 중복응답)를 기록했다. 아마존의급성장 배경은 음원의 DRM(Digital Rights Management ; 디지털 저작권 보호)을 해제하고 신곡 구입비용을 저렴하게 책정한 데 있다.

최근 들어 애플도 DRM이 없는 음원 판매를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두고 업계는 긴장하는 분위기다. 전 세계적으로 95%의 음원이 불법으로 유통되고 있는 상황에서 공식적인 음원 판매 사이트에서조차 DRM이 없는 파일을 판매하게 되면 음악 파일의 공유와 복제가 자유로워질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더구나 음악을 무료로 듣는 방법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스트리밍 서비스는 물론 광고와 결합하여 음악을 무료로 받는 방법도 있다. MP3 파일을 구매해서 듣는 소비자의 행동 패턴에도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의미다. 애플의 아이튠스와 경쟁사들의 사업도 어떤 영향을 받을 지 좀 더 지켜 볼 일이다.

④ 노키아의 오비(Ovi), 애플의 앱스토어

2007년 8월 노키아가 컨텐츠 포털인 오비(Ovi)를 열었다. 사업자도 아닌 단말 업체가 컨텐츠 포털을 만들겠다는 발상도 과감했지만, 이 사업에 대한 노키아의 노력은 더욱 과감했다. 네비게이션 소프트웨어 업체인 나브텍을 81억 달러를 주고 인수한 것을 비롯하여 음악, 광고, SNS 등 다방면에 걸쳐 업체들을 인수했다(<표 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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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1> 노키아의 콘텐츠 업체 인수

노키아가 오비의 실적을 공개하고 있지 않아 노키아의 컨텐츠 사업 진출 성과를 정확히 가늠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노키아가 밝힌 서비스와 소프트웨어 매출은 증가세이긴 하나 여전히작은 규모이다(<그림 4> 참조).

모바일 컨텐츠 시장에서 뜻밖의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애플이다. 업계에 따르면 애플은 앱스토어를 통해 적게는2,000만 달러에서 많게는 1억 6천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양사의 희비를 가른 경험의 차이

노키아와 애플의 희비가 갈리는 배경에는 기기의 특성, 양 사의 서비스 방식 차이등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다. 그 중에는 경험의 차이도 한 몫을 하고 있을 것이다. 사실 애플의 앱스토어는 새로운 사업 모델이 아니다. PDA 사업에서는 OS 업체가 협력사에 SDK(Software Development Kit)를 공개하여 어플리케이션을 만들고,소비자들은 이것을 PDA에 깔아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애플은 컨텐츠 공급자와 소비자가 한 자리에 모이는 마켓 플레이스를 만들어서 이러한 과정을 좀 더간단하게 만들었으며, 이것이 앱스토어인 것이다. 한 때 PDA 사업에 몸담았던 애플에게 이러한 사업 모델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선택인 지도 모른다. 반면 노키아는 이런 경험이 없었다. 오비는 단방향성 컨텐츠 포털이라는 점에서 사업자의 기존 서비스와 차별화하지 못했다. 오비를 보았을 때 ‘한번 써보고 싶다’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노키아는 여전히 학습하는 과정에 있다. 게다가 노키아의 컨텐츠 사업의 궁극적 목표는 신흥 시장이라 한다. 지금의 경험이 어떤 결과로 나타날 지 노키아의 행보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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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노키아 서비스 & 소프트웨어 매출 규모

승부처는 숏테일에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노키아를 쓰는 고객과 애플을 쓰는 고객의 성향 차이이다. 최근 AdMob이 발표한 단말 기종 별 트래픽 점유율 조사를 보면 애플이 단연 선두이다.8 스마트폰을 통해 모바일 인터넷을 사용하는 시간 중에 33%가 아이폰을 통 해이루어지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반면 모바일 컴퓨터라고 불리우는 N95의 트래픽 점유율은 3.3%에 불과하며, 순위권에 있는 노키아 단말들의 실적을 모두 더해도 아이폰에 미치지 못한다.

다시 말하면 노키아의 사용자들은 최고급 사양의 단말을 쓰지만 그것으로 모바일 서비스를 사용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노키아 유저는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인 반면, 애플 유저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할까. 그러나 모바일 인터넷을 주도하는 소비자들은 하드웨어를 좋아하는 노키아의 고객이 아니라 서비스 경험을 좋아하는 애플의 고객이었던 셈이다. 왜 노키아의 오비가 애플의 앱스토어와 같은 돌풍을 일으키지 못하는지 설명이 되는 부분이다.

모바일 인터넷처럼 현재 보급 단계에 있는 서비스는 그것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은 소비자들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컨설팅 회사 맥킨지의 조사에 따르면 모바일 인터넷은 강력한 숏테일(롱테일의 반대: 시장을 주도하는 소수 소비자)이 주도하고 있는데(<그림 5> 참조) 애플은 바로 이들 숏테일에게서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또한 고객은 스승이 되기도 한다. 애플이 앱스토어를 열게 된 배경에는 해커들의 집요한 공격과 보수적인 애플의 플랫폼 운영 정책에 불만을 표시한 개발자들이 있었는데 이를 통해 애플은 앱스토어와 같은 개방형 사업 모델이 낫겠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이 사업에서 중요한 것은 역시 얼마나 많은 고객을 확보하느냐가 아니라 핵심 고객을 누가 잡는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Ⅲ. 성공 요인과 현실적 장벽

성공한 업체들의 공통점

단말과 컨텐츠를 연계하여 성공을 거둔 업체들에게 일관되게 발견되는 점은 무엇일까?

첫째는 컨텐츠 업체를 규합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게임은 하드웨어의 유통력과 기술적 플랫폼이 그러한 역할을 했고, 음악에서는 아이튠스와 같은 음악 관리/판매 솔루션, 모바일 포털에서는 OS와 SDK(Software Deveopment Kit)가그러한 역할을 수행했다.

두번째 힘은 고객 기반이다. 강력하지만 니치(Niche)에 불과하다는 평을 받았던 애플이 승승장구하는 원인도 여기서 찾을 수 있겠다. 그러나 이것은 한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단말과 컨텐츠를 연계한 모델의 장점이 고객과의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서라지만, 사실 강력한 고객 기반이 없다면 이 사업에서 성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망하기에는 이르다. 고객과의 관계는 새로운 타게팅(Targeting)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소니는 2차원 평면 게임에 싫증내던 젊은 얼리어 답터들의 마음을 읽었고, 닌텐도는 지나치게 어려운 게임에 엄두를 내지 못하는 중장년과 여성들의 심리를 읽었다. 하지만 이것도 하루아침에 나온 결과는 아닐 것이다. 소니는 누구보다도 게이머의 속성을 잘 이해하는 개발자들을 보유하고 있었고 닌텐도는 30년간 어린이를 상대로한 사업을 하면서 쉬운 것을 원하는 고객의 심리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세번째, 하드웨어의 중요성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하드웨어는 서비스의 물리적 상징이 되기 때문이다. 하드웨어의 컨셉은 서비스 타겟인 고객을 끌어들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스펙의 강력함을 내세운 N95를 사는 고객과 UI를 통해 만지는 재미를 강조한 아이폰을 사는 고객의 성향이 다르듯이 말이다. 또한 컨텐츠에 맞게 하드웨어를 얼마나 진화시킬 수 있는가도 이 모델에서는 중요한 승부처가 된다. 사례에서 자세히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세가나 팜, 소니 에릭슨과 같이 단말-컨텐츠모델을 선보였던 업체들이 경쟁에서 낙오하게 된 배경 중 하나가 하드웨어 경쟁에서 경쟁사에 뒤쳐졌기 때문이다.

짚고 넘어가야 할 현실적 장벽들

그러나 하드웨어-컨텐츠 연계 모델의 장점과 이상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야심찬 투자는 실패에 그치고, 절치부심하여 경쟁에서 이겼다 하더라도 완전히 다른 사업 모델과의 경쟁에 직면하기도 한다. 그저 ‘열심히’ 한다고 해서 성공할 수 있는 게임이 아니기에 더 어려운 것이다.

단순 결합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기기와 컨텐츠는 본원적으로 밀접한 관계에 있지만 실질적으로 이 둘을 연결하는것은 무엇일까? 앞서의 사례들은 그에 대한 몇 가지 유형을 제시한다.

첫째, 사업적인 약속이다. 단말 사업과 컨텐츠 사업 사이에 협력에 대한 합의나 전략적인 지침이 있는 경우다. 소니의 영화사 인수가 그에 해당한다 하겠다. 그러나 컨텐츠의 독점적 사용을 원하는 하드웨어 측의 논리와 원소스멀티유즈(One SourceMulti Use)를 기본으로 하는 컨텐츠 업의 속성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결합은 지속성을 갖기 어렵다. 아직 컨텐츠 사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시점에서 나온 다소 미성숙한 결합 모델이라 하겠다.

두 번째, 단말의 바로가기 버튼이나 대대적인 홍보와 같은 마케팅적인 결합이다. 노키아의 오비, 애플의 아이튠스를 비롯한 단말에 연계된 뮤직 서비스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러한 모델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단말 사용 고객이 해당 서비스를 사용하도록 유도하는데 상당한 마케팅이 필요하다. 또한 고객이 해당 컨텐츠만을 쓰도록 강제할 수 없기 때문에 애플처럼 서비스와 하드웨어가 독점과 유사한 수준의시장 지배력을 갖지 않는 한, 사업이 성공할 확률이 높지 않다. 이러한 모델은 수익보다는 고객서비스 차원에서 바라보는 것이 옳다.

가장 강력한 결합 형태는 컨텐츠의 종류와 포맷을 결정할 수 있는 플랫폼을 단말이 통제하는 경우다. 게임 업체가 서드 파티를 규합할 수 있었던 것, 애플이 앱스토어를 열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이러한 통제력을 가졌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닌텐도와소니의 전성기는 각각 10년을 갔고, 애플은 노키아의 오비보다 훨씬 유연하게 운영되면서도 고객에게 더 큰 혜택을 제공한다. 단말과 컨텐츠의 연계는 단순한 결합이아니라 ‘플랫폼’이라는 기반 하에서 비로소 지속성과 안정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연결이 지나치면 선택의 권리를 침해받는다고 느끼는 고객이 증가한다는 한계점은 여전히 남는다.

후발주자는 성공하기 어렵다

후발주자가 고전한 것은 온라인 음악 사업만이 아니다. 소니가 닌텐도를 제치기는 했지만, 그것은 하드웨어의 혁신적인 변화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고, 마이크로소프트가 게임기를 만들어 일정 부분 성과를 거두었지만 전세를 뒤집지는 못했다. 파나소닉과 같은 후발 업체들도 게임기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모두 철수했다. 그만큼 이 사업 모델에서는 후발주자가 선발주자를 추월하는 사례가 드물다.

선발주자에 대한 쏠림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컨텐츠 사업의 속성 때문이다. 컨텐츠 유통은 후방의 컨텐츠 공급자와 전방의 소비자 사이에 위치하는데, 공급자와 소비자 모두 유통의 스케일을 요구한다. 애플의 아이튠스가 강력한 것은 아이팟의 힘도 있지만, 보유 곡수와 사용자 규모가 경쟁사 대비 최고이기 때문인 것이다. 이처럼 컨텐츠 사업에서는 강자는 더 강해지고, 약자는 더 약해지는 쏠림 현상을 피하기 쉽지 않다.

영원한 결합은 없다

사례들을 잘 살펴보면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데 단말-컨텐츠 연계 사업 모델의 기회는 유통 구조의 변화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두 번의 변곡점이 있었는데 첫번째는 컨텐츠의 디지털화였고, 그 다음으로는 온라인 유통의 시작이었다. 유통 구조의 변화는 소비자에게 혼란을 초래한다. 변화를 감지한 소비자들이 새로운 방식의 유통을 요구하지만, 기존의 업계가 이를 잘 대응해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때 단말 업체가 컨텐츠와 연계한 모델을 제공하면 높은 소비자 가치가 발생한다. 이것이 단말과 컨텐츠가 결합되는 메커니즘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새로운 유통 구조가 성숙해지면 고객들은 좀 더 개방된 모델에서 더 큰 가치를 느낀다. 플레이스테이션처럼 사용할 수 있는 컨텐츠가 정해진기기보다는 애플의 앱스토어처럼 누구든 컨텐츠를 공급할 수 있는 마켓플레이스가 컨텐츠의 다양성과 가격 측면에서 더 경쟁력이 있다. 이것이 좀 더 발전하면 소비자들은 제조사가 만들어 놓은 규칙들을 벗어나 더 많은 컨텐츠를 더 싸게 사고 싶어한다. 이 과정에서 컨텐츠 사업은 분리되는 것이다. 비디오게임 시장이 온라인 게임에 자리를 내어주고, 온라인 음원의 DRM이 해제되는 것은 통합에서 개방으로, 개방에서 분업으로 이어지는 흐름 속의 한 과정인 것이다. 따라서 모바일 단말에서 각광받고 있는 단말-컨텐츠 연계 사업 모델 역시, 어느 정도의 지속성을 가질 지에 대해서는 좀 더 신중한 분석이 필요할 전망이다.

Ⅳ. 시사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컨텐츠 사업은 단말 제조에 집중된 우리 전자 업계가 가장 고심하고 있는 분야 중 하나이다. 이 시점에 필요한 것은 조급함에서 비롯된 막연한 이상론도 아니고, 방관적인 회의론도 아닐 것이다. 선발 업체들이 자사 단말 사용자를 대상으로 컨텐츠 서비스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업체가 지금과 같은 자리에 머무를 수는 없다. 그러나 앞서 본 것과 같이 후발주자는 선발주자를 이기기 어렵고, 컨텐츠 유통 방식이 바뀔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선발주자를 따르기만 하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 오히려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사업 기회를 찾아보고, 그를 위해 준비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더맞는 접근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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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북미 모바일 인터넷 사용자 분포

아직도 남아 있는 기회들

컨텐츠 유통 구조의 변화가 단말-컨텐츠 연계 사업 모델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은 이미 앞서 언급한 바 있다.

우선 단말에 닫혀있는 컨텐츠를 개방하여 가치를 창출할 지점이 어디인가 고민해 보자.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영역은 닌텐도가 주도하고 있는 모바일 게임기시장과 가정용 비디오 게임 시장이다. 단말 제조업체가 컨텐츠 업계를 연계할 수 있는 플랫폼 기반만 만든다면 휴대전화나 TV가 닌텐도의 제품을 대체하는 것은 수직통합에서 개방으로 이어지는 흐름에 적합하며, 이 과정에서 국내업체가 기회를 선점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두 번째 남아 있는 기회는 인터넷이 모바일로 옮겨가는 지점이 될 것이다. 컨텐츠 제작 업체의 협상력이 강하고, 유통의 쏠림 현상이 심한 컨텐츠 영역보다는 유통의 균열이많아 단말 업체가 파고들 여지가 많은 컨텐츠 시장을 좀 더 주목해 볼 것을 권한다. 영화나 음악 같은 엔터테인먼트 컨텐츠는 온라인 유통이 모바일로 그대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고 스케일에 대한 요구도가 높아 선발자로의 쏠림 현상을 피하기 어렵다. 대신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정보와 활동들을 넓은 의미에서 컨텐츠라고 정의해 보자. 교육이나 뱅킹, 투자 등 생활에서 이루어지는 활동들이 모바일로 옮겨졌을 때 창출할 수 있는 고객가치는 크다. 또한 이러한 컨텐츠들은 생산 주체가 다양하고 서비스 지점이 집중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단말 업체가 서비스 업체를 규합하기도 비교적 용이하다. RIM이라는 중소업체가 푸쉬이메일 서비스로 돌풍을 일으킨 배경을 잘 살펴보자. 모바일로 이메일을확 인하고 싶은 소비자의 니즈는 많았으나 컨텐츠를 관리하는 회사가 모두 다르다보니 이러한 욕구를 충족하기 쉽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RIM은 이것을 가능케하는 솔루션을 단말에 탑재해 판매함으로써 일종의 컨텐츠 유통의 균열로 발생하는 문제점을 해결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이 가능한 영역이 과연 어디일까 고심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일들

이러한 기회를 잡기 위해서 고민해야 할 점은 두 가지다. 첫째는 국내 업체가 경쟁력을 가진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일차적인 문제는 OS와 같은 소프트웨어 역량이 될 것이다. 그러나 좀 더 근본적인 의미에서 플랫폼은 기술이 아니라 약속이다. 즉 단말과 OS가 서로 연동되는 방식이 후방 업체들에게 충분히 주기적이고 예측 가능한 형태로 변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기술과 시장의 변동에 따라 즉각적인 단말 차별화를 계속해 왔던 국내 업체들이 단말과 컨텐츠를 연계한 모델을 고민한다면 기술적인 플랫폼과 더불어 이를 운영하는 노하우를 갖지 않으면 안된다.

두 번째는 고객과의 관계다. 새로운 서비스를 시작하려면 그것을 흡수해 주어야할 고객이 있어야 하는데 이 때에는 공급자와 구매자 이상의 그 무엇이 필요하다. 이것이 애플은 가졌지만 노키아가 갖지 못한 것일 지도 모르겠다. 우리 업계도 마찬가지다. 국내 업체들은 제품을 신뢰하는 수준을 넘어 그 브랜드가 제안하는 행동 방식을 따르려는 고객을 가지고 있는가?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찾아내고 만들어야 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고객을 잡느냐가 아니라 그 서비스를 이용해 준 핵심 고객을 선점하는데 있기 때문이다...손민선 책임연구원
출처: LG경제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