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삼성전자의 보도자료를 접하며 전 세계 시각장애인의 수가 1억 8천만명이나 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어마어마한 숫자네요!
그런데 우리나라의 시각장애인들의 경우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굉장히 제한적이더군요.
생계유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기에 직업은 누구에게나 장애가 있거나 없거나 간에 가장 중요한
요소일텐데요.
국내 시각장애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은 대략 두세 가지 정도랍니다.
첫 번째는 잘 아시는 것처럼 안마사입니다.
시각장애인 중 대다수가 이 직업을 택하고 있는 듯합니다.
얼마 전 시각장애인들이 안마를 통해 생계를 보존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시각장애인 생존권 보장을 위한 합헌 촉구 결의대회가 열렸을 만큼 굉장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직업입니다.
그 다음이 장애인이나 각종 복지원 등의 교사 정도입니다.
이것도 저것도 안 된다면 지하철에서 자주 마주치게되는 구걸 정도가 그들이 택할 수 있는 직업군이지요.
그런데,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어렵다는 개발자라는 직업을 택한 사람이 있습니다.
시각장애인용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개발자 황병욱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시죠.
이 글은 마이크로소프트웨어 2008년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피아노 치는
프로그래머의 개발일지
한 분야의 일가를 이룬 장인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타고난 기질보다는 집착으로 비춰질 만큼 기본기에 충실한 면모를 갖춘 이들이다. 기본기의 중요성을 모를 리 없지만 절박함이 사라진 시대에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황병욱 씨의 개발일지는 여느 개발자보다 몇 곱절 품이 든다. 개발서 한 권을 읽으려면 낱장을 일일이 스캐닝해서 음성으로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글 | 문경수 기자 objectfinder@imaso.co.kr·사진.동영상 | 한국마이크로소프트 황선영
‘로그인한 후 볼링 게임을 선택한다. 키는 스페이스 키만 쓴다. 키를 누르면 스피커를 통해 소리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들려온다. 양쪽 스피커의 중간쯤에서 소리가 들리면 스페이스 키를 누른다. 스텝 밟는 소리가 들인다. ‘땡’ 소리가 나기 전에 다시 한 번 스페이스 키를 누르면 공이 핀을 때린다.’ 소리의 위치를 이용한 온라인 게임이다. 달리기 게임도 소리로 스텝을 대신하다 보니 장애물을 못 넘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했다.
시각 장애인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엑스비전테크놀로지에 근무하는 개발자 황병욱 씨, 올 해로 4년째 개발에 몸담고 있다. 요즘엔 시각장애인용 온라인 게임을 개발하지만 멀티미디어 제작과 음성 데이터 편집도 겸하고 있다. 인력도 문제지만, 본인이 좋아서 자청한 일이다. 황병욱 씨를 비롯해 엑스비전테크놀로지의 개발자는 모두 시각장애인이다. 센서리더가 읽어주는 텍스트 정보를 듣고 코딩을 한다. 마침 인터뷰를 하다 보니 책상 위에 놓인 모니터가 모두 꺼져 있었다. 모니터를 꺼 둔 이유부터 물어봤다. “음성을 듣고 코딩하기 때문에 코딩할 땐 모니터가 필요 없습니다. PC가 다운되거나 디자인 작업을 할 땐 모니터를 켭니다.” 키보드를 눌러야 음성을 읽어주긴 하지만 음성을 듣고 치진 않는다고 했다. 피아노 고수들이 건반을 보지 않는 것처럼 에디팅할 때 주로 음성의 도움을 받는다.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컴퓨터를 접했다. 도스화면의 검은 색 바탕에 흰색 텍스트를 보며 한 마디로 ‘꽂혔다’고 말했다. 주변에서는 특수교육학과에 진학해 교사를 해보라고 권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만드는 걸 좋아했거든요. 손이 놀면 심심한 캐릭터가 바로 저거든요”. 처음 도스를 배울 땐 외국에서 만든 영어음성 카드에 한글을 읽게 만든 프로그램을 썼다. 그 무렵 현재 엑스비전테크놀로지의 대표인 송오용 씨가 국산 음성카드를 이용해 도스화면을 읽을 수 있는 ‘SRD’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당시 대부분 시각장애인들이 SRD를 사용해 컴퓨터를 배웠다.
개발자가 된 건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어서다. 시각 장애인들의 직업이 다양하지 않다 보니 좀 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단다. 시험을 보거나 진학을 위한 공부보다는 프로그래밍을 위한 공부에 흥미를 느꼈다. 프로그래밍을 위한 언어, 수학, 물리처럼 서로 연관 지어 공부하는 걸 즐겨한다. “흔히 컴퓨터를 쓰다 불편하면 쉽게 해주는 프로그램을 찾지만 개발자는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이 점이 개발자의 큰 매력인 것 같아요. 내가 불편하니까 직접 우물을 파는 거죠. 대신 파주길 기다리다가는 시간만 흘러가요. 내가 파서 먹는 것과 남이 파서 먹여주는 것. 물맛이 완전히 다르거든요.”
황병욱 씨처럼 시각장애인 중에 돈을 받고 개발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복지관이나 엑스비전테크놀로지에서 일하는 사람이 전부라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서로 만나 교류할 상황이 못 된다. 어려운 개발 지식은 어떻게 얻는지 물었다. 오히려 “개발자끼리 공유하기보다는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접촉하는 게 아이디어를 얻거나 사고확장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개발자라고 매일 전공 책만 봐서는 안 됩니다. 그 외적인 부분에 많은 관심을 찾아야죠. 결국 아이디어 싸움인 것 같아요.”
방식이 다를 뿐, 중요한 건 결과
안보고 개발한다는 건 아픔이 있다고 말한다. 눈감고 개발한다는 건 스스로 봐도 신기하다. 함께 일하는 과장님과 사장님이 코딩하는 걸 보면 마냥 신기하단다. 여느 개발자와 다른 방식으로 결과를 내야 하니 투자한 시간이 엄청나다.
개발자들이 흔히 쓰는 분석기나 모델러를 설치해도 다이어그램으로 표기되니 답답할 때가 많다. 초기에 게임 서버와 클라이언트를 제작할 때는 에러를 찾지 못해 프로그램 전체를 엎었던 적도 있다고 했다. “순서도를 보며 전체적인 로직을 볼 수 있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겠죠. 이런 부분이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도 코딩의 결과물은 텍스트니까 괜찮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보습득에 시간이 배로 들어간다. 웬만큼 전체 로직을 외우지 않고서는 코딩을 진행하기 어렵다고 했다.
학창 시절엔 전공교재 한 권을 받기 위해 각서를 쓰고 공부했다. 책이 아닌 텍스트를 받는 거라 저작권에 대한 각서를 썼다. 이해는 된다고 한다.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을 누가 공짜로 쓴다면 마음이 똑같이 아플 것 같다고 한다. “요즘은 스캐너로 번역하거나 꼭 읽고 싶은 책은 봉사자에게 입력을 부탁해서 센스리더로 읽습니다. 바코드를 써서 읽는 미디어도 소수지만 있어요. 하지만 아직 멀었죠.” 하루가 멀게 새로운 플랫폼이 출현하지만 얼만큼 시각장애인이 접근할 수 있을지 염려된다고 했다. 95%가 사용해도 5%가 쓰지 못하면 접근성을 다시 고려해야 하는 건 아닐까.
인간미 나는 개발자를 꿈꾸다
작업이 되지 않을 땐 자거나 책을 읽는다. 주로 컴퓨터 음악에 대한 자료나 음악을 청취한다. 개발을 안 할 때는 다른 쪽 영역을 채운다. 이게 안 되면 저것에 투자하거나 집중한다. 그 결과 교회 반주자를 맡을 정도로 피아노 실력이 수준급이다. 회사 건물 위층에 있는 교습소에서 짬을 내 매일 연습한다고 했다. 기자 일행을 위해 직접 반주를 들려주기도 했다.
MSDN POPCON(blog.msdn.com/popcon)에서 동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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