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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랭이 사는 이야기

인연

35년전.

젊은 부부는 성남의 성호시장 근처 몫 좋은 자리에 판자로 허름한 가게를 짓고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담배며 이런저런 물건들을 팔며 도외지 생활의 꿈을 키워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 가게 바로 옆 자리에 한 중년의 아주머니가 자리를 펴고 앉아 같은 제품을 팔지 시작했습니다.

청년은 화가나서 아주머니께 따져물었습니다.

"아니 아주머니 이미 장사하고 있는 옆 자리에서 같은 물건을 팔면 어쩌십니까?"

아주머니도 그 말이 이해가 안 되는 바는 아니지만 마땅히 더 좋은 자리를 찾기도 어렵던 터라

그냥 같이 장사하면 될 일이지 이 시장 바닥에 니자리 내자리가 어디있냐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분위기가 험악해 질때쯤 싸움을 말린 사람은 배가 볼록한 새댁이었습니다.

아주머니는 다시 눌러앉아 장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지나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다급해진 아주머니는 물건들을 챙겨서 슬쩍 젊은 부부의 판자 가게로 들어갔습니다.

새댁은 말없이 누룽지를 폴폴 끓여 내왔습니다.

차갑던 몸과 마음은 누룽지탕 한 그릇에 눈 녹듯 녹아내렸습니다.

그 후로 아주머니는 물건의 종류를 바꿔 그 자리에서 장사를 하셨고, 지나던 사람은 그 아주머니와 새댁이 닮았다며 친정 엄마냐며 묻곤 했답니다.

홀로 서울에 올라와 인연을 맺고 살던 두 부부는 그 아주머니를 아예 어머니라 부르며 마음을 붙이고 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새댁의 뱃속에 있던 아기가 호랭입니다.

우리는 그 아주머니를 할머니라고 하고 아저씨를 할아버지라고 부르며 살았지요.

부모님들은 두분의 도움도 참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 아니 새로운 친척이었던 셈이지요.

지난 크리스마스는 그 할아버지의 생신이셨습니다.

이제는 그때의 호랭이보다 훨씬 커다란 두 아들을 둔 호랭이 내외가 두분의 생일을 챙기는 참으로 오랜 인연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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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식구 안 되는 우리집과는 달리 할머니 할아버지 댁은 정말 대가족입니다.

한 방에 사람이 다 들어가지 못할 만큼 많지요. ㅎ.ㅎ

사진에서 맨 오른쪽에 있는 뒷모습만 보이는 머리 하얀 분이 우리 할머니입니다.

학교 선생님이셨고 아는 것도 참으로 많으셨던 할아버지는 이제 여든이 코앞이십니다.

아마 호랭이 네살 때였던 걸로 기억됩니다.

장사를 시작한 부모님들을 돕기 위해 호랭이가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맏겨진 적이 있었습니다.

대학 다니는 막내 아들을 둔 두 내외는 호랭이를 참으로 잘 보살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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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인연은 참으로 오랜 세월을 먹이 삼아 점점자라며 사람의 삶과 인생을 변화시키는 무시무시하고 감사한 존재인 듯합니다.

이제 2007년도 하루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다른 어느 해 보다도 다양한 일들을 겪고 또 얻은 것 또한 많은 2007년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 일과 좋은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된 것입니다.

2008년에도 소중한 인연들이 많이 생겨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